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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슨최면의 위대함을 탄생시킨 밀튼 에릭슨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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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3-03-06 15:31 조회3,1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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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 에릭슨(1901~1980)은 그는 정신의학자이면서 심리학자였고 최면치료자면서 가족치료자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최면계뿐만 아니라 심리치료 분야에서의 그의 영향력은 아주 광범하였다. 그에 대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에릭슨의 생애

 



에릭슨은 미국 네바다주의 작은 골짜기인 오럼(Aurum)이라는 광산지역에서 태어났다. 그는 삶의 과정에서 많은 장애와 고통을 겪었다. 무엇보다도 그를 괴롭혔던 것은 전체 삶의 과정에서 두 번이나 소아마비를 경험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17세의 나이인 고등학생 시절에 심한 소아마비로 인해 침대에서 누워있는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51세때 인생의 두 번째 소아마비를 다시 겪을 정도로 그는 많은 장애를 겪었다. 그 외에도 그는 색맹, 난청, 음치의 장애를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릭슨은 특유의 낙천성과 긍정성, 그리고 열정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였고 그러한 장애 경험은 이 그의 치료자로서의 자세와 태도에 크게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그가 위대한 최면가로서의 삶을 살게 하였다.

 



한편 에릭슨은 학문적인 호기심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의과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도 심리학을 공부하여 심리학석사학위까지 취득을 하였다. 그래서 그는 정신과 의사이면서도 동시에 심리학자로서의 자격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에릭슨은 의과대학에 다닐 때 당시의 주류 치료법인 정신분석을 공부하였으나 그것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래서 보다 효과적인 다른 대안적 치료법을 찾는 과정에서 최면에 보다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 에릭슨이 최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것은 위스콘신대학교의 심리학과 학부학생 시절 때부터였다. 그는 유명한 행동주의심리학자인 클라크 헐(Clark Hull) 교수의 최면 시범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그는 헐 교수의 피험자 한 명을 자신의 기숙사 방으로 초청하여 최면을 걸어보았다. 그때부터 그는 스스로를 최면사라고 생각하고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최면실험을 열심히 하였다. 에릭슨은 콜로라도종합병원 (Colorado General Hospital)에서 의학학위를 받았으며 여러 병원에서 의사와 연구직을 수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웨인주립대학교 (Wayne State University)의 대학원 교수 및 의과대학의 조교수가 되었으며 동시에 미시건주립대학교 임상심리학과의 객원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에릭슨은 1950년부터 건강상의 이유로 더운 지방인 아리조나주의 피닉스로 옮겨서 살았다. 그곳에서 그는 개업의로서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하였고 동시에 미국 전역과 외국으로 최면에 관한 강의와 세미나를 주최하기 위하여 여행을 하기도 하였다. 에릭슨은 1957년에 미국임상최면학회를 창설하고 초대회장을 맡았다. 이 학회는 현재 미국에서 임상최면을 사용하는 보건 및 정신건강 분야의 가장 큰 전문단체이다. 그는 또한 학회의 공식 학회지를 창간하고 10년간 편집장으로 지내기도 하였다.

 



그가 별세한 후에는 그의 부인이 편집장을 계속 맡기도 했다. 현재는 그가 살았던 피닉스에서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밀턴에릭슨재단(Milton Erickson Foundation)이 설립되어 있으며 그 단체를 중심으로 에릭슨 최면을 보급하기 위한 노력이 제자들을 중심으로 널리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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